諱 滉(原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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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군공(原山君公)

 

  원주원씨는 고려 때부터 명문가였다. 

  (원익)께서는 문과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하였고,  


그 후손 (원 홍)은 국자진사로부터 지위가 숭록대부 지문하성사에 이르렀다.
그 아들 (원 광)은 중정대부 종부령동정이었고,
그 아들 (원 방)은 수의부위동정으로 이조참의에 증직되었고,
그 아들 (원 헌)은 적순위정용낭장으로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이분이 공의 4세조인데, 부인 원씨는 고려 때 진사 천상의 딸로, 관향의 고을은 같으나 계통이 다르다. 

 

공(원 황)께서는 이조에 들어 생원을 거쳐, 1405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직을 거쳤으나 기록이 없어지고 전해오지 않아  증명할 수 있는 것만 기록한다.  

 


사간원우정언, 형조도관정랑, 은풍현감, 전주부판관을 지내고 일찍 물러나 세상을 마쳤다.
자호와 생존시의 행적은 세대가 멀어 자세히 살펴볼 수가 없다.
묘는 횡성현 서갈풍의 서쪽들에 있다.
순충보조공신 이조판서 원산군에 추증된 것은 전례와 같이 장남(문정공)의 공로로 되었다.
부인은 같은 군의 이씨로 영중랑장 반계의 따님이다.
묘는 공과 같은 언덕에 봉분을 달리 하여 묘소를 이루었다. 

  

 슬하에 4남3녀가 있었는데,
장남 孝然(효연)은 예조판서를 지냈고 원성군에 훈봉 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차남 孝而(효이)는 현감으로 참판에 추증되었다.
그 다음 孝矣(효의)와 孝哉(효재)는 현감이다.
딸들은 사직 김영륜, 윤신손, 찰방 김석견에게 시집갔다. 

 


 손자와 증손자 이하는 많아서 모두 기록하지 못하되 문무벼슬이 현달한 자로
손자     맹수는 첨중추요, 중거는 병사요, 중륙, 중치는 주부이다. 
증손     치는 첨정이요, 여는 경력이요, 숭조는 현령이요, 팽조는 병사이다.
현손     호는 감찰이요, 개는 첨추요, 팽로는 사복정이요, 계채는 감찰이요,  

           계검은 이조판서요, 계성은 부사요, 송수는 첨중추요, 욱수는 부사이다.
5대손    순보는 사의요, 호변은 응교요, 호준은 감찰이요, 호지는 장령이요,  

            량은 수사요, 호는 목사요, 희는 부사로 왜란에 순절하였고, 여림은 군수이다.
6대손   사순은 도사요, 사영은 진사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어버이 곁을 떠나기 어려워  

           나아가지 않았고,  

           사열은 전부요, 신은 병사요, 개는 첨추요, 박은 도사요, 협과 율은 전부요,  

           종식은 현감이요, 종일은 첨정이요,  

           성모는 찰방으로 참판에 추증되었는데 병자호란에 순절하였고,  

           성집은 동중추요, 유남은 지중추 원계군으로 시호는 충숙이요,  

           성남은 방어사로 정사공신에 녹훈되었고, 색과 충은 현감이다.
7대손   욱은 장령이요, 숙은 통제사 원천군이요, 해일은 부사요, 해익은 정랑이요,  

           해윤은 주부요, 사신은 현감이요,  리길은 군수요, 장길은 첨추요,

           두표는 좌의정 원평부원군으로 시호는 충익이요, 두추는 부윤이다.
8대손   재는 첨추요, 상은 통제사요, 즙은 군수요, 식은 정랑이요,  

           격은 첨추요, 적은 현감이요, 철은 사예요, 절은 장령이요, 만석과 만리는 감사요,  

           만춘은 우윤이요, 만형과 만성은 부사요, 세형은 첨추이다.
9대손   태구와 만화는 현감이요, 시형과 덕하는 부사요, 덕휘는 통제사요, 성유는 승지요,  

           익과 몽정은 첨추요, 몽린은 흥평위요, 몽익은 사의이다.
10대손 백규는 병사요, 태규는 감찰이요, 경운은 첨정이요, 치도는 정랑이요,  

          명익은 부사요, 명구는 목사요, 명직과 명항은 현감이다.
11대손 경하는 정언이요, 경순은 한림이요, 경림은 군수이다. 

 


외예손으로 삼공 벼슬을 한 사람으로는
   정창연, 태화, 치화, 지화, 재숭, 홍섬, 허욱, 김상용, 상헌, 수흥, 수항, 창집, 이세백, 의현, 이유, 김우항, 정호, 윤지선, 지완, 이관명, 건명, 홍치중이다. 

 


정경(正卿)이하는 모두 싣지 않으나,
   김창협, 송상기, 이병상은 대제학이요, 김상용의 사위 우의정 장유는 인선왕후를 낳았다. 

 

  듣건대, 갈풍역(葛豊驛)은 예전에 이 산의 형국 안에 있었는데, 문정공께서 임금을 뵙고 실정을 말씀드려, 형국 밖에 임금께서 내려주신 땅에 어버이의 장지로 삼기를 청하자, 세조께서 특별히 허락하셨다고 한다.   


이 일이 비록 살펴 볼 기록은 없으나,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 또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듯하다.   


공의 묘표음기(墓表陰記)에는  

단지 “정통 임술 시월 정유에 장사지내다.” 라고 하였고,  

부인의 묘표음기(墓表陰記)에는 단지 “선덕 병오 팔월에 장사지내다” 라고만 하였으니, 모두 세종임금 때의 일이다.   


어찌 그리 전설과 선후가 현격하게 다른가?   


그러나 일의 이치로 미루어 보건대 옮겨 설치할 일이 없다면 논의할 것이 없겠고, 과연 그것이 있었다면  생각건대 이 산은 추후에 장지로 마련한 곳이되, 다만 그 묘표는 옛날 것을 그대로 세웠던 까닭에 전설과 묘표가  이렇게 선후로 의심할만한 점이 있는 것인가?
옮겼다는 말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또 이곳에 장사지낸 일이 과연 어느 해에 있었으며, 옮겼든 옮기지 않았든 공과 부인이 돌아가신 것이  과연 모두 장사지냈다고 기록한 해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 쫓아서 상세하게 알 수 없다. 

 

 

 가장(家狀) 

 


  공의 성은 원(元)이요, 휘는 황(晃)인데, 뒷날 예종 임금의 이름이 황(晃)이기 때문에 족보와 비(碑)에 황(滉)자로 썼으니,  아마도 감히 임금과 같은 글자를 쓰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1405년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도관정랑, 사간원우정언을 지냈다.
은퇴가 세종 말년이니 전후로 지낸 벼슬이 이에 그치지는 않았겠으나,  

세대가 아주 멀고 증명할 문헌이 없어 다른 것은 헤아릴 수 없고, 오직 지방에 근무했던 기록에 근거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은풍현감, 전주부판관 뿐이다.  

 


공이 돌아가시고 10 여년 뒤에 장남인 문정공(文靖公)께서 계훈봉례를 올려  

공께 순충보조공신정헌대부 이조판서겸 홍문관대제학 성균관대사성 원산군(原山君)에 추증되었고,  묘는 횡성 갈풍의 서쪽을 바라보는 들녘에 있다.
 부인은 원주이씨로 영중랑장을 지내고 예부상서에 추증된 반계의 따님이다.
장지는 공과 같은 언덕이나 봉분을 달리 하여, 공의 묘소 앞으로 7-8보 되는 거리에 동남쪽을 향해 묘소를 이루었다. 

 


자호와 생졸년은 전해지지 않아 미상이고, 두 분 모두 수척의 짧은 묘표가 있는데  관작과 휘만 썼고,  뒤쪽에 새기기를 정통 임술 시월 정유 “문정공 39세, 1442년 세종 24년” 에 세운다 하였고, 부인의 묘에는 선덕 병오 팔월 “문정공 23세, 1426년 세종 8년” 에 세운다 하였다. 

 


옛날에 어버이를 장사지낼 때, 무덤을 만든 날에 작은 바위로 묘비를 세우던 풍습을 생각해본다면  공과 부인의 상례는 장사를 지낸 해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는 원주에서 나왔으니, 문과 (원 익子)으로 비조(鼻祖)를 삼고,  

4대를 전하여 (원 홍)께서는 국자진사 문하시중이었으며,  

(원 광)께서는 종부시령동정으로 치사(致仕)하였으며,  

(원 방)께서는 수의부위동정으로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으며,  

(원 헌)께서는 적순위정용낭장으로 병조참판에 증직되었으니 

     곧 공의 4세조로, 고려조 진사 원천상의 사위인데 본이 같지는 않다.
  4남3녀가 있었는데,
장남 효연은 판서 원성군이니 곧 문정공이다.
차남 효이는 현감으로 참판에 추증되었고, 효의와 효재는 현감이다.
딸들은 사직 김영륜, 윤신손, 찰방 김석견에게 시집갔다.
첨중추 효연의 아들 맹수는 장방인데 무과로 출신했고,
                           중배는 절도사로 판서에 추증되었고,
                           중거는 주부로 참판에 추증되었고,
                           중륙과 중치는 주부이다.
                           중방은 삼방을 내었는데, 아들은 무진과 숙제이고,
                           계방의 아들은 계정이다. 

 

현손 이하는 단지 현달한 분만 들면 다음과 같다.
                         팽조는 절도사요, 
                         계채는 관찰사요, 계검은 판서요, 
                         량은 절도사와 방어사를 지낸 충장공이요,
                         호는 부사로 참의에 추증되었고,
                         희는 왜란에 순절하였고,
                         호변은 응교요, 
                         호지는 장령이요,
                        신은 절도사요,
                        유남은 원계군으로 충숙공이요, 
                        성집은 동중추요,
                        찰방으로 참판에 추증된 성모는 병자호란에 순절하였고,
                        숙은 통제사 원천군이요,
                        두표는 좌의정으로 충익공이요,
                        두추는 부윤이요,
                        해일은 부사요,
                        해익은 정랑이요, 
                        선전관을 지내고 부정에 추증된 승길과 좌랑에 추증된 이길은  

                        그 아버지 성모를 따라 같은 날에 순절하여 포증된 분들이다.
                        상은 통제사요,
                        만석과 만리는 관찰사요, 
                        만춘은 우윤이요,
                        즙은 군수요,
                        식은 정랑이요,
                        격은 첨중추요,  

                        적은 현감이요,
                        철은 사예요,
                        절은 장령이요, 
                        덕휘는 통제사요, 
                        몽린은 흥평위요,
                       성유는 부윤이요,
                        덕하는 부사요,
                       치도는 정랑이요,
                       백규는 절도사요,
                       명규는 동중추요,
                       필규는 지중추요,
                       경운은 동중추요,
                       명익은 도정이요, 
                       해익은 동중추요,
                       경하는 판서로 치사하였고,
                       경순은 판서요,
                       정헌공 경렴은 참판이요,
                       원흥군 중회는 절도사요,
                       계영은 사서요,
                       인손은 판서요,
                       의손은 대사간이요,
                       후진은 부사이다.  

 

공께서는 관란선생을 아우로 삼으시고 문정공(文靖公)을 아들로 삼으셨다.  

 


밝은 때에 벼슬하여 진출할 길이 바야흐로 열렸으나, 마침내 한 간관(諫官)으로 임하(林下)로 용기 있게 물러나셔서  종신토록 후회하지 않으셨으니, 그 기를 당세에 볼 수 있었던가.  

 


지금까지 삼백여 년 사이에 십이 세를 거치는 동안 자손들이 꽤 번성하였고 높은 벼슬이 이어졌으며,  간간이 후비, 의빈, 절의, 훈명이 여러 번 후손에게 나왔으니,  

덕 있고 선한 행적을 비록 공에게서 찾아서 얻을 수는 없지만  

세속을 피하는 몸가짐과 후손을 편안하게 하는 행실을 이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간략한 의물(儀物)이 조각나고 부서져 다 없어지려 한다.  

더욱이 이대로 세월이 흘러갈까 걱정되어 새롭게 만들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10대손인 일규(一揆)가 널리 기록을 찾아 일을 시작하였으나 해내지 못했는데,  

인손(仁孫)이 마침 호남을 살펴보고 바위를 캐어서 바꾸었고, 중회는 평안절도사인데 재물을 내어 도왔다.  

 

유고(遺稿) 

 

은풍(殷豊) 동헌(東軒)에 쓰다.   

 

偶因王事到殷豊(우인왕사도인풍)  우연히 나랏일로 은풍에 이르니
山路高低雪壓松(산로고저설압송)  산길은 오르락내리락 눈이 솔을 눌렀다.
縣吏趨迎官道左(현리추영관도좌)  현리는 좇아 나와 관도왼편에서 맞이하는데,
自慚今日少民功(자참금일소민공)  부끄럽구나, 이제까지 백성 다스린 공 없으니 

 


영락을미십이월일(永樂乙未十二月日) 현감(縣監) 원성(原城) 원모(元某) 

 

※ 14세손 명구(命龜)가 영천(榮川)에 수령으로 있을 때, 

 ▪풍기선생안(豊基先生案)▪을 살펴보니,  

부군께서는 갑오년에 은풍현감(殷豊縣監)에 제수되어 병신년에 체직(遞職)되셨다.  

은풍은 곧 지금의 풍기현창(豊基縣倉)이다.  

문정공(文靖公)께서 도백(道伯)으로 순찰하다가 여기에 이르러 차운(次韻)하서 현판이 두 개 있다고 한다. 


일관론(一貫論) 

 


영락(永樂) 을유년(乙酉年) 과거 급제했을 때 지었다.  

 

  논하여 이른다.
“도(道)는 하나뿐이다. 인심에 쌓아서 혼연히 하나의 리(理)가 된 것은 도의 체(體)이며,  

만물에 흩어져 쓰임이 각기 같지 않은 것은 도의 용(用)이다.
성인의 마음은 혼연한 하나의 리라서 아직 발동하지 않았으면  

그 중(中)을 극진하게 하여 치우치고 기우는 바가 없고,  

이미 발동하였으면 그 화(和)를 극진하게 하여 차이나고 틀리는 바가 없다.
부자지친 · 군신지의 · 부부지별 · 장유지서로부터  

삼천삼백의 예(禮)와 만사만물의 리에 이르기까지 널리 대응하고 빠짐없이 맞이하여  

그 마땅함을 다하는 것은 모두 혼연한 진(眞) · 실(實)의 유행에 있으니,  

비유컨대 천지가 지극히 성실하여 각기 제 자리를 얻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다.  


이 밖에는 다시 남은 법이 없고, 그 일관된 묘(妙)는 더욱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앎이 지극하고 배움이 정밀하지 않으면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공자의 제자로 총명하고 재능과 식견이 있는 분은 한두 명에 그치지 않았으나,
오직 증자만이 그 뜻을 들을 수 있었고, 과연 그 묘를 묵묵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응함이 빠르고도 의심이 없는 것은 그 문인(門人)에 이르면 증자의 유(唯)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쉽게 깨닫게 하려고 ‘학자는 자신을 다하고 자신을 미루어야 한다.  

[學者盡己推己]’는  조목을 빌어서 “부자(夫子)의 도(道)는 충서(忠恕)일 뿐이다.” 라고 말하였다.  

 


 충서의 도는 크구나!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음은 천지의 충서요,  

‘하나로써 뀀은 부자의 충서요, 

 ‘자신을 다하고 자신을 미룸 은 학자의 충서이다.  

증자는 학자의 충서를 빌어서 부자의 일관을 밝혔고, 정자는 천지의 충서를 빌어서 부자의 일관을 밝혔다.  

그런 뒤에야 부자께서 증자에게 알려주신 것과 증자가 문인에게 알려준 바  

그 지의(旨意)의 심오한 이치가 밝아지지 않음이 없으니,  

학자에게 의지되는 것이 있음이 도한 크다.  

 나는 일찍이 이편을 읽음에 세 번 되풀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리 부자는 주(周)나라 말엽에 태어나시어 홀로 이 도를 일관에서 깨우치시고  

사도(斯道)를 한 몸에 맡으셔서 행단(杏亶)에서 가르침을 베푸시고 목탁을 두드려 사문(斯文)을 진작시키셨다.  

삼천 명의 문도와 일흔 명의 유초가 모두 그 일관의 뜻을 볼 수 없었고,  

오직 안회의 아성만이 거의 가까웠으나 하늘이 사문을 아끼지 않으셔서 그 몸을 일찍 없어지게 하셨다.  

이에 일관의 학문이 거의 끊어졌다.
부자의 마음이 어떠하였겠는가?  

다행히도 증자가 있어 ‘하루에 자신을 세 번 살피는’  부지런함과  

‘열개의 손가락이 가리킨다는〔十手〕’의 경계함으로 그 노둔한 기질을 변화하여 얻는 바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사문을 전할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하시고는  

그가 묻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바로 알려주셨고,  

증자가 한 번 ‘유(唯)’함에 안회에 대한 아프고 슬픈 마음이 사그라져 녹았다.  

그 뒤에 과연 증자는 충서로 전하였고,  

자사(子思)는 ‘소덕대덕’으로 전하였고, 맹자는 ‘진심 · 지성’으로 전하였다.  

일관의 도는 유래 있는 것이다.  


부록(附錄) 

 


을유문과방목(乙酉文科榜目) 명(明) 영락(永樂) 3年. 本朝 太宗 5年(1405). 〕 

 

을과삼인(乙科三人) 

 


생원  유  면(兪  勉)          부친 사귀(社貴) 본관 인동(仁同)
                                    관직 지평(持平)
        정  초(鄭  招)          부친   희(熙)   본관 하동(河東)
                                    관직 이조판서(吏曹判書)·대제학(大提學)
                                    문경공(文景公)
주부  정지당(鄭之唐)        부친 구보(龜普) 본관 광주(光州)
                                    관직 장령(掌令) 

 


병과칠인(丙科七人) 

 


생원  김상직(金尙直)          부친   겸(謙)   본관 상주(尙州)
                                      관직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조서로(趙瑞老)          부친   반(胖)   본관 백천(白川) 임술(壬戌)
                                      관직 지신사(知申事) 

        이  긍(李  兢)            부친 계선(繼先) 본관 함평(咸平) 도평(道平)
                                      관직 이조참판(吏曹參判)
        송을개(宋乙開)          부친   유(瑜)   본관 여산(礪山)
                                      관직 정언(正言)
        양여공(梁汝恭)          부친   숙(肅)   본관 충주(忠州) 경지(敬之)
                                      무오(戊午)
                                      관직 병조정랑(兵曹正郞) 호 유정(柳亭)
                                      효행으로 정려를 받음.
부승  이안유(李安柔)          부친 석지(釋之) 본관 영천(永川) 이립(而立)
                                      관직 정언(正言)
생원   박  기(朴  기)           부친            본관
                                      관직 예조좌랑(禮曹佐郞)
     
동진(同進)23명   

 


생원  김극신(金克信)          부친            본관 장성(長城)
        채지지(蔡知止) 지정(知正)이라고도 한다.
                                      부친            본관 평강(平康)
                                      관직 한림(翰林)
        최종해(崔宗海)          부친 종겸(從謙) 본관 전주(全州)
        유상지(兪尙智)          부친 귀생(貴生) 본관 창원(昌原)
                                      관직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
        박  의(朴  誼) 의(宜)라고도 한다.
                                      부친            본관
                                      관직 수원교수(水原敎授)
        박  식(朴  式) 욱(彧)이라고도 한다.
                                      부친            본관
                                      관직 사성(司成)
        최  민(崔  岷)            부친            본관
                                      관직 통천군수(通川郡守)
        조숭덕(曺崇德)          부친            본관
                                      관직 공조참의(공조참의)
        권  조(權  照) 희(熙)라고도 한다.
                                      부친  정(定)    본관 안동(安東)
                                      관직 필선(弼善)
        주명신(周命新)          부친            본관 


        권구사(權九思)          부친            본관
                                      관직 예조좌랑(禮曹佐郞)
         송  치(宋  寘)           부친 광우(匡祐) 본관 진천(鎭川)
                                      우(祐)는 우(佑)라고도 한다.
                                      관직 정언(正言)
        김종서(金宗瑞)          부친   수(수)   본관 순천(順天) 국경(國卿)
                                      관직 좌의정, 충익공(忠翼公), 호 절재(節齎)
        차  유(車  有)            부친            본관
                                      관직 우헌납(右獻納)
        양  질(楊  秩) 철(鐵)이라고도 한다.
                                     부친            본관   

                                     관직 사인(舍人)
        신  도(申  圖)           부친            본관
                                     관직 헌납(獻納)
        이  함(李  咸) 성(誠)이라고도 한다.
                                     부친            본관
                                     관직 직산현감(稷山縣監)
         이  뢰(李  賴)          부친            본관
                                     관직 우헌납(右獻納)
         김  창(金  敞) 상(尙)이라고도 한다.
                                    부친 충경(忠敬) 본관 삼척(三陟)
                                    관직 부사(府使)
         원  황(元  晃)         부친   헌(憲)   본관 원주(原州)
         박거선(朴居先)       부친            본관
         김구경(金九冏) 구(九)는 구(久)라고도 한다.
                                    부친            본관
                                    관직 예문관직제학(예문관직제학)
        최덕지(崔德之)        부친   담(霮)   본관 전주(全州) 우수(迂수)
                                    관직 예문관직제학, 호 연촌(烟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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